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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고] 국가보안법, 한 청년의 삶을 무려 20여년간 송두리째 짓밟아 왔다

충북청년신문 기자 son96005@naver.com 입력 2021/06/07 13:32 수정 2021.06.07 13:39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선언


국정원, 기무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20여년간 장기간에 걸친 사찰과 공작해왔던 국가보안법 피해자 청년이 기고문을 보내왔다. 아래는 기고문 전문이다.


[기고]국가보안법, 한 청년의 삶을 무려 20여년간 송두리째 짓밟아 왔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선언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당위로써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제정신인 제 인생을 살고 싶어서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제게 강요했던 모든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모든 것은 국가보안법이 전부 가져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으로 쌓아온 모든 죄악과 함께 국가보안법은 사라져야 합니다.

 

 

 

뇌가 통째로 바깥으로 뽑혀 나가는 고통입니다.

 

기나긴 20여년의 세월 국가보안법은 한 청년의 삶을 송두리째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습니다.

10대 초등생때부터 군생활, 사회생활까지 기나긴 20년을 따라다니며, 가장 다복해야하는 가족을 서로 감시하고 반목하게 하였고, 삶을 피폐함으로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

 

범죄 문제에도 일관되게 관여하여 왔고, 한 청년은 범죄의 소굴 속에서 자신이 철저히 파괴당하는 끔찍한 고통이 끝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끝없이 물어왔습니다. 2008년 육군 28사단 태풍부대에서 기무사와 국정원 합동조사 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유형의 행태였고 공작이었습니다.

 

약점을 노리다 약점을 잡고 잔인하게 파고들었고, 젊은 청년은 어느새 범죄의 소굴속에 빠져들어 있었고, 경찰 검찰 재판부가 합동하여 더 큰 범죄자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당위로써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제정신인 제 인생을 살고 싶어서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제게 강요했던 모든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모든 것은 국가보안법이 전부 가져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으로 쌓아온 모든 죄악과 함께 국가보안법은 사라져야 합니다.

 

< 죽을 것 같았던 공포 >

 

20년이 넘는 기나긴 사찰, 죽을 것 같은 공포였다.

 

2000년도 국정원에 의한 간첩단 조작사건은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권하에서도 현재도 진행형이며, 국가보안법은 한 청년의 삶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합니다.

 

저는 2000년도 충북지역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 당사자 박응용씨의 장남 올해 33살 박인해입니다.

 

저는 충북지역 간첩단 조작사건이 있었던 2000년도 11살 이후 현재까지 국정원, 기무사, 경찰, 검찰로부터 - 학교에서, 생활속에서, 군대에서, 구속직전의 상황, 최근 검찰의 사건처리 행태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죽음의 공포, 지속적인 사찰 속에서 있었습니다.

 

20여년의 시간동안 가족을 감시하고, 의심하고 증오하게 하는 죽음의 공포 속을 헤맨 파멸의 구렁텅이, 군대에서 갑자기 끌려가 아버지가 간첩이라고 노골적으로 협박당하고, 너무나 무섭고 소름끼치는 죽음과 같은 공포와 아버지의 동향을 파악해서 알려주고, 돈을 받아가며 살아야 한다는 참혹한 현실 앞에 가족도, 세상도, 국정원, 기무사도 너무 증오스럽고 원망스러웠으며, 아무리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고,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또 언제든지 다시 감옥에 갈수 있다는 올가미에 걸려있는 신세로 참혹한 삶 자체였습니다.

 

올해 33살 청년인 저는 11살 이후 초등학교에서는 아버지에 대해 담임선생님이 아버지 어디있냐? 뭐하고 다니냐? 묻고, 모르는 낯선 아저씨들(나중에 국정원 직원임을 알게됨)이 동생 박인홍 만나서 아버지 어디있냐? 묻는 것을 들었습니다.

 

군복무 중이던 2008년 7월 경 저는 아무 영문도 모른채 갑자기 기무사에 끌려가서 몇일동안 조사받는 자체가 너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아빠 뭐하시냐? 어떤 활동 하시냐? 물으며 진술을 잘하면 별 문제없이 넘어갈 것이다. 제대로 이야기 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전역할 수 없다. 아버지의 간첩활동으로 아버지가 하고 있는 활동을 제대로 이야기 하지 않으면 너도 무기징역 살수도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데 그게 얼마나 무서운법인줄 아느냐? 조사관의 말대로 될까봐 두렵고 공포스러웠습니다.

 

기무사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도 사찰을 지속했습니다.

 

2013년경 저는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삶의 막판까지 몰려 있었고 2달간 찜질방을 전전하며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이 돈도주고 먹을 것도 사주니까 고마운 사람들이라 생각했습니다. 죽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당시에는 고마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저의 단순 절도사건에 생활범죄수사팀이 담당해야 할 사건을 청주 청원경찰서 강력3팀(임선빈, 홍경태)이 전담했으며, 홍경태, 임선빈은 나를 청주지역에서 신고 접수된 현장을 데리고 다니면서 신고사건 현장 돌며 사건을 재구성하였습니다.

 

다른 건도 니가 한거 아니냐? 며 협박도 하였으며, 한 두건 추가된다고 처벌이 추가 되는것도 아닌데 니가 한 것으로 하자! 홍경태와 임선빈은 재물손괴죄를 특수절도로 몰아 형량을 높였고, 재판에 넘겨져 초범임에도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선고받았습니다. 경찰조사를 받고 나서 임선빈으로부터 3만원을 받았습니다.

 

홍경태과 임선빈은 사건종결 이후에도 가끔씩 잘 지내냐? 뭐하고 있냐? 아직도 나쁜짓 하냐? 아버지는 뭐하시냐 문자나 유선전화로 유도심문과 회유성 연락을 지속 하였습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홍경태와 임선빈은 문자와 통화 등으로 계속 관리하며, 사찰을 계속하였습니다.

 

2015년 8월 8일 토 오전 11시 8분 홍경태 형사 ‘잘 지내는겨? 자나보네 오창 갈일 있어서 노걸대서 해장국 사주려 했더만 근무하는 편의점이 어디냐? 담에 들를께...’

따라다니면서 밥사준다 문자하고 전화했습니다. 일하는 편의점에도 와서 일잘하고 있냐? 나쁜짓 안하냐? 가족들과 연락하냐? 묻고 갔습니다.

 

2019년 3월 27일 검찰 조사로 갑자기 구속되기 직전에도 통화하고, 3월 내내 통화하고, 관리되었으며, 별거 아니니까 그냥 검찰에 출석해도 된다고 회유하며, 검찰에 출석하여 조사받을 것을 종용하였고, 그말을 믿고 아무대책도 없이 검찰에 출석하여 조사받으로 가서 곧바로 구속되었습니다. 재판중에 추가되는 혐의 내용이 있었으나 집행유예로 나올꺼라 생각했는데 검사실에서 바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저는 영원히 빠져 나올수 없는 불행과 올가미에 걸린 토끼처럼, 국정원, 기무사, 경찰, 검찰들로부터 사찰과 협박으로 공포에 휩싸여 무기징역을 받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언제든지 다시 감옥에 갈수 있다는 두려움, 비참하게 가족의 정보를 주고 몇만원씩 돈을 받으며 살고 있는 저 자신이 저주스럽고 비참하였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본질문제보다 증오하고 원망할 대상을 찾았고 가족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복수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2021년 단순교통사고 사건이 벌금이나 단순 사건처리가 아니라 검찰에 의해 아무 관련이 없는 형법으로 기소되고, 형사부에 배당되고 또다시 구속된다는 상상과 철창에 갇힌다는 부담과 두려움에 불면증과 우울증이 생겼고 그로인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신경안정제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중에 있습니다.

 

최근 검찰의 별건기소, 표적기소 사건을 겪으면서 그동안은 아버지한테도 한번도 얘기하지 않고 숨겨왔던 경찰의 사찰문제와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얘기하였고, 국가보안법으로 20년 넘게 저를 어둠속에서 비참하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왔던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2013년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홍경태, 임선빈의 지속된 사찰>

2018년 6월 1일, 3일, 10월, 2일

2019년 3월 15일, 16일, 26일 27일(구속되기 직전) 통화

2021년 3월 23일 홍경태 통화

3월 25일 임선빈 통화

3월 29일 청원경찰서에 임선빈형사 찾아가서 만남. 사기문제로 사건접수하러 갔다가 만남. 요즘 어떻게 지내냐? 어디사냐? 예전주소에 살고있냐? 3만원 받음.

임선빈 형사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고 만날때마다 돈을 주었습니다. 홍경태 형사는 주로 전화나 문자로 연락을 하였습니다.

 

2000년 간첩단 조작사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국가보안법은 한 청년의 삶을 죽음의 공포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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