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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아카데미 3] 5.30 선거와 한국전쟁

박헌영의 주장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손종표 기자 / son96005@naver.com입력 : 2020년 09월 16일
[청년 아카데미 3] 5.30 선거와 한국전쟁

박헌영의 주장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1950년 5월 30일 임기 2년의 국회의원선출을 위한 총선거 실시가 예정되어 있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남로당 중앙당은 5.30선거에 대해 “망국적인 5.30 단독선거를 파탄시켜라!”라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민초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민초들은 5.30선거를 이승만 정권을 응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민초들은 선거에 적극 참여했다. 남로당 지침은 그 어느 곳에서도 시행되지 않았다.

5.30선거 결과는 여야 우익 진영 모두를 합쳐도 전체 의석의 38%인 81석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이승만 직계는 44석씩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무소속은 전체 의석의 60%인 126석에 이르렀다. 무소속성향은 매우 다양했지만 진보· 중도 비중이 크게 증가한 것은 매우 분명했다.

당시 대통령의 임기 또한 2년이었고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되어있었다. 5.30선거 결과 이승만 실각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되었다.
새로운 정부는 친일파를 처단하고 북한과 협상을 통해 평화통일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것이 5.30선거에 적극 참여한 민초를 바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전쟁이 터지며 모든 게 달라졌다. 이승만은 전시 상황을 이용해 직선제 개헌을 추진함으로써 장기집권 발판을 마련했다. 5.30선거 결과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한국전쟁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며 소련 외교 문서 등 관련 자료가 공개됨에 따라 모든게 분명해졌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무력통일 시도로 시작되었다. 박명림 교수의 저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북한 수뇌부가 무력통일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인물은 {엘리트주의 화신이기도 했던} 남로당 총책 박헌영이었다. 박헌영은 북한 인민군이 38선이 이남으로 진주하면 20만 명에 이르는 정예로운 남로당조직을 중심으로 민중 봉기가 일어나 쉽게 전세를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수뇌부는 박헌영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박헌영의 주장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미국은 첩보를 통해 북한의 무력통일 추진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CIA 극동본부 책임자였던 하리마오 무사시야(박승억)은 저서《38선도 6.25한국전쟁도 미국의 작품이었다》를 통해 이와 관련된 상세한 증언을 하고 있다.

미국 상층부는 북한 무력통일 관련 정보를 애써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실질적인 준비 태세는 빈틈없이 갖추어갔다. 약20만 명에 이르는 주일미군도 만약의 경우 즉각 한반도로 진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CIA와 국방부 일각에서는 1950년 6월 중순 북한이 침략할 경우 신속히 후퇴해 세력을 결집한 뒤 인천항에 상륙, 반격한다는 작전 계획까지 수립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얼마 전인 1950년 4월 8일에는 NSC-68(국가안전회의 68번 각서)를 통해 국방비를 종래 135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로 급속히 증대시키는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미국은 북한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북한 수뇌부는 무력통일 시도하더라도 소련과 중국이 버티고 있는 조건에서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았다. 설령 개입하더라도 본토 병력이 투입되기까지는 두 달 정도 걸릴 것이며 그 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주일미군이라는 변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만약 미군이 개입하면 돕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미군이 한반도 중부 해안에 상륙해 허리를 자르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경고했으나 이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뇌부가 낙관주의 포로가 되어있는 상태에서 북한은 1950년 6월25일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북한 인민군은 짧은 시간 안에 서울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인민군은 박헌영이 공언했던 대로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3일간 서울에 머무렀다. 하지만 민중봉기 조짐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손종표 기자 / son96005@naver.com입력 : 2020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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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5.30 선거 친일파 처단 평화통일 추진 이승만 실각 엘리트주의 화신 박헌영 NSC-68(국가안전회의 68번 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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