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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아카데미 2] 반민특위 활동의 무력화

좌익은 사실상 붕괴했다. 좌익은 주어진 공격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곧바로 역습 당한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경험해야 했다.
손종표 기자 / son96005@naver.com입력 : 2020년 09월 16일
[청년 아카데미 2] 반민특위 활동의 무력화

좌익은 사실상 붕괴했다. 좌익은 주어진 공격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곧바로 역습 당한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경험해야 했다.


1948년 5월10일 남한 단독 선거를 거쳐 8월15일 단독정부가 수립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친일파를 제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비록 친일파 주도로 단독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친일파 처단 여론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헌법을 제정한 제헌의회 역시 결코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제헌의회는 제헌헌법 제101조에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를 근거로 1948년 9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절대 다수 동의로 전문 3장 32조에 이르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이 통과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처음에는 이 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여론에 떠밀려 공표 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는 곧바로 김상덕을 위원장으로, 김상돈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하였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5일 중앙청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반민특위는 박흥식 체포를 시작으로 이종형과 최린 등 거물급 친일파들을 속속 체포하였다.

반민특위 활동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자 민초들은 열광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2월2일자 <서울신문> 사설은 “민족정기가 살았느냐 죽었느냐를 의심했더니 과연 민족정기는 죽지 않았다. 보라! 눈부신 반민특위의 활동을!” 이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했다. 분위기는 특별재판부가 1949년 3월 28일부터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재판을 시작함으로써 더욱 고조되었다. 이승만과 친일파는 재기 불증의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빠졌다.

좌익과 임정 세력은 그사이 힘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지를 모아 반민특위 활동을 최대한 뒷받침했다면 양상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민초 여론과는 크게 어긋나는 행보를 했다. 좌익은 반민특위 활동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들의 눈에 반민특위 활동은 반동적인 이승만 정권 내부의 일에 불과했다. 무관심이 부른 후과는 끔찍했다.

이승만은 반민특위가 조직적 뒷받침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이승만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1949년 6월6일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친일파들은 반민특위를 향해 결정적인 공격을 가했다. 무장한 친일파 경찰들은 반민특위 본부를 포위하고 특위 요원과 직원 35명을 체포해 각 경찰서에 수감했다. 수감된 특위 요원들은 심한 고문을 받았고 석방되었을 때에는 23명이 적어도 일주일에서 한 달 이상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승만과 친일파는 일거에 반민특위를 격파했다.

이승만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이승만은 좌익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1949년 10월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남로당, 근민당, 인민당 등 133개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불법화했다. 이와 함께 1949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11만 8,621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형했다.
처형된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좌익에 속해 있었지만 임정 세력 또한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피바람이 몰아치는 극심한 탄압 속에서 좌익 세력 상당수가 투항과 전향을 택했다. 남로당 서울시당의 경우 핵심대열이 한꺼번에 투항하기도 했다. 결국 남로당 조직은 거의 붕괴 되었고, 좌익 계열 인사들 대부분이 이승만 정권 관리 아래 들어가고 말았다. ‘보도연맹’도 좌익 제거와 전향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좌익은 사실상 붕괴했다. 좌익은 주어진 공격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곧바로 역습 당한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경험해야 했다.
좌익은 붕괴했고, 임정 세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민초들은 그 와중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민초들 앞에 친일파를 제압할 기회가 또다시 찾아왔다.

손종표 기자 / son96005@naver.com입력 : 2020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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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좌익붕괴 반미특위활동의 무력화 처절한경험 단독정부 제헌의회 반민족행위특별법 눈부신반민특위 문재인정부 두번째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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